[이 아침에] 길 잃은 작은 새
커다란 자카란다 나무에 앉은 어린 새를 봤다. 파란 새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작고 까만 부리로 짹짹댔다. 평화로운 장면이었지만 외로이 있는 새는 다급히 누구를 부르는 듯했다. 그 장면을 보니 우리가 미국에 이민 왔을 때가 생각났다. 실생활에서 체험하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는 상상 이상이어서 육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날도 여느 때나 다름없이 주차비를 아끼려 멀리 떨어진 길거리에 주차하고 학교로 향하는 길이었다. 연한 갈색의 도요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가냘프게 울었다. 매년 겨울이면 도요새는 캐나다에서 출발해 겨울을 나기 위해 이 고장을 지나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며칠 전에 거대한 도요새 무리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봤다. 지난밤에 불었던 강풍 탓일까, 어린 새는 새 떼의 이동 경로에서 벗어났다. 홀로 있는 새를 보며 ‘길을 잃었구나’ 라고 직감했다. 하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서둘러 강의실로 발길을 돌렸다. 수업을 들으면서 생각은 줄곧 그 작은 새에게로 쏠렸다. 이 낯선 곳에서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가려는지. 그곳은 코요테 같은 짐승도 자주 눈에 띄는 장소인데. 여린 새가 가여웠다. 그 새를 보니 이민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은 만화책,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가 떠올랐다. 좋아서 즐겨보던 황미나의 그림에 빠져서 눈에 띄자마자 모두 빌려봤다. 밤새 읽었건만 공항 가는 날 아침까지 차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가볍게 손에 쥐는 한갓 만화책이었지만, 적잖은 조언과 많은 여운을 남겼다. 어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주인공 신애가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산다는 극히 평범한 이야기지만, 능력 없는 그녀가 느꼈던 좌절과 고단한 생활은 곧 다가올 나의 미래처럼 느껴졌다. 생소한 곳에서 살 것이라는 두려움과 근심 때문이었을까, 한 장면 한 장면을 머릿속에 새겨두고 싶었다. 주 5일 일하며 대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낯선 미국에서의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삭막한 현실을 등에 짊어지고서도 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신애의 삶에 힘입어서인지 몰랐다. 그 후로 거의 40년이 흘렀다. 다행히 함께 한 가족이 있어 삶은 안정되어갔다. 모든 것이 항상 그대로일 수는 없다. 돌이켜보면 고난도 한때에 불과했다. 보라색 꽃이 황홀하게 피어있는 가지 위로 엄마 새가 찾아왔다. 정답게 날아가는 그들을 보며 안도했다. 바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에서 신애는 어떻게 살았을까. ‘길 잃은 작은 새’의 후편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면 좋겠다. 오늘따라 그녀가 그립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도요새 무리 이민 오기 이동 경로